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로시마의 경고문 (문단 편집) === 걸프전의 경우와 비슷한 에피소드 === 이런 류의 괴담이 또 하나 있는데 군사독재정권 시기 보도할 수 없었던 현대사의 숨겨진 이면을 추적하던 MBC의 <[[이제는 말할 수 있다]]> 프로그램에서 "2차 대전 연간에 일본이 핵을 개발해서 흥남 앞바다에 실험했다" 라는 잘못된 보도를 한 적이 있다. 2005년 6월 12일 방영한 98회 "「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, 일본의 원폭개발」- 박건식" 편인데, 여기서 증거로 제시한 '''바다에서 관측된 버섯구름'''은 [[기뢰]] 폭발 등 다른 폭발 목격담을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. 당시 한반도 지역에도 드물게나마 미 폭격기가 떨어뜨렸거나 해류 등으로 인하여 한반도 해역에 기뢰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. 이는 해방 후 한국 해군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JMS니 AMS니 하는 명칭이 전부 기뢰전 전문함정이라는 사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. 그런데 나중에 일부 사람들이 북침괴담으로 자주 이용하였고 이런 것을 믿은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. 그러나 당대 일본의 국력으로 핵무기 개발은 무리수였다. 미국이 원자폭탄 두 발을 만들기 위해 [[맨해튼 계획]]에 약 '''20억 달러'''를 투자한 것으로 보나[* [[M4 셔먼]] 전차의 당시 단가가 $47,000이었으니 '''43,000대'''를 만들 금액이다.] 미국과는 비교조차 민망할 정도로 크게 후달리던 일본의 과학기술력이나 공업생산력을 생각하면 그냥 공상소설에 불과하다. 일본이 만들고자 했던 것은 핵분열의 효율성을 높인 제대로 된 핵폭탄이 아니라 [[더러운 폭탄]]에 가까웠기 때문에 기술적인 난이도는 훨씬 낮긴 했지만(폭발력이 증가하는 게 아닌 일반 폭발에다가 [[방사능]] 오염이 추가되는 수준) 당시 일본의 기술력과 자원 활용 능력은 그런 폭탄개발 수준조차도 달성하기 힘들었다. [[니고연구]] 문서 참조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